원시시대의 늙은이들은 젊은몸을 하고 있었을까?

원시시대의 늙은이들은 젊은몸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요즘도 가끔보면 실제 나이가 70대인데, 몸은 30대 수준인 사람들이 있다.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 관리하고 한 사람들이다.

원시시대에는 지금만큼 음식이 풍족하지 않으니,
원하지 않아도 다이어트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모두 날씬했을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또한 음식을 얻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더 많이
몸을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킬로씩 걷고 달려 사냥을 했을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자라는 과일이나 곡물은 알이 작고, 벌레먹어 먹을 수 있는게
얼마 없으므로, 체집하는 노력도 몇배나 들고,
먹어야 하는 양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다이어트와 운동이 생활속에 그대로 녹아있었던 것이다.
요즘시대에 아주 드물게 보이는
몸짱 할아버지,할머니가 원시시대의 일반적인 노년층 모습이 아니었을까?

평균수명의 함정
옛날에는 어린나이에 많은수의 사람이 죽었다.
오죽했으면 100일이 되기전까지는 내 애가 아니라는 말까지 있었겠는가?
평균 수명40이라는 말은 40까지 살고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5살에 죽는 사람이 40프로
60살에 죽는 사람이 60 프로라면
평균수명은 38세가 된다.

흘러야 한다

쌓이는 것은 대체로 좋지가 않다.
핏속에 찌꺼기들도 흘러흘러 몸 밖으로 나가야하고,
한곳에 머문 마음도 현재를 따라 흘러야 한다.
강물도 흘러야 썩지 않고, 하다 못해 무생물인 바위나 흙조차도
길게 보면 변하고 또 변하니, 그 상태는 흐르는것에 비유할 수 있다.
스트레스도 쌓이도록 두어서는 안되고,
내몸에 지방도 쌓아두지말고 흘러 내 보내는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며-출산, 그 극한의 고통!

이제서야 일어났다.
어제 24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여, 정신없고 흥분된 마음을 한잔의 칵테일과 맥주로 달랜 후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양수가 터진것은 엊그제 저녁 9시 경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하루종일 크게 움직이는 유나때문에 많이 피곤해진 아내는 먼저 침실에 들어갔다.
TV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화장실로 급히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후 화장실에서 나온 아내가 “유나가 이제 나오고 싶은거 같아” 라고 말했다.
양수가 터졌다.
멍하게 영화를 보던 마음에 갑자기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내의 양수가 터진것”은 처음 겪는 상황이라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
아내는 장모님과 처남에게 전화하고, 입원 준비물을 챙겼고, 나도 나 나름대로 병간호를 하기 위해 준비물을 챙겼다.
사실 내가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아기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 배터리, 내 핸드폰과
금연중에 먹고 있는 사탕, 신분증등을 챙겼다.
장모님과 처남을 기다리는 중에도 또한번 양수가 나왔다.
양수는 터진다고 한번에 쏟아져 버리는게 아니다.
정말 다행인것은, 저녁 9시에 나오고 싶어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아내가 검사실로 들어가고, 나는 장모님,처남이랑 복도에서 기다렸다.
30분쯤이 지나자,  혹시나 아내가 아이를 안고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슬 올라왔다.
장모님 말씀이, 처남의 여친인 빅토리아가 태어날때는 그 어머니가 양수 터진후 3시간 만에 출산했다고 했다.
울 와이프는 그보다 더 빨리 출산하는게 아닐까? 하는 무지개빛 기대를 약간은 하고 있었다.
이때만해도 아이는 씀뿡~ 낳는거라고,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산고를 겪는것은 그저 특별한 사람들이야기 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채 40분이 되기전에 아내는 검사실에서 나왔다.
아직 아기가 나오려면 멀었다고, 입원실을 배정받았다고 했다.
3시간마다 검사를 해야한다고 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계속 검사했다. 아내는 검사를 기다리는 사이사이에 입원실에 들어가 쉬었지만,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저녁 9시반 검사
새벽 12시반 검사
새벽 3시반 검사
새벽 6시검사
6시검사에 들어간 아내는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뭔가 다르다. 2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 유나가 세상에 나오는건가?
아직 아니었다.
정확한 시간이 기억나지않지만, 대략  9시정도에 아내는 검사실에서 다시 나왔다.
장모님과 이야기하다가, 나를 껴안고 고통을 참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또 장모님과 이야기하다가, 나를 껴안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참고…
산통이 시작된 것이다.
곧 나도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했다.
아 이제는 됐구나.
 금방 쑥 나오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엊그제 본 유투브 비디오에서도 산모들은 아아악~~ 몇번 한 후에 쑥쑥 잘도 낳았다.
11시쯤 나도 분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주는 옷으로 갈아입고, 카메라를 챙겨 분만실로 들어가니,
아내는 분만용 침대에 누워있었고, 배에는 자궁수축감시 센서와 아기심장소리 센서를 붙이고 있었다.
이 두개의 센서를 통해서 NST(Non-Stress Test)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기록하여 그래프를 만든다.
아기 심장센서는 아기의 활동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자궁수축센서는 자궁의 수축과 함께 , 아내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11시에 들어갔을때는 진짜 한두시간 안에는 애가 나올 줄 알았다.
6시부터 진통을 했다고 생각해 보면 11시는 5시간째가 되니,
6~7시간이면 아이를 낳기에는 충분한 진통이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진통시간을 머릿속에서 희망적으로 주워 맞춘 예측이었다.
진통은 3분 30초 정도마다 찾아왔다.
그중 1분은 진통, 2분 30초는 휴식이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반까지 6시간동안 그와 같은 진통이 지속적으로 점점더 강도를 더해 진행되었다.
한번 진통이 찾아올때마다,아내의 입에서는 가슴속 저 깊은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신음소리가 났다.
악에 받친 소리도, 도망가려는 신음도 아니었다.
한없이 나약한 몸으로 주어지는 극한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며 짜내어 지는 신음이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원초적이고 애처로웠다.
그렇게 우는 아내의 표정은 생전 처음 보았다.  한없이 고통스러운 아내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는것 같았다.
일주일 내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데, 어제 밤에는 아예 한숨도 못잔 몸으로 그런 통증을 벌써 몇시간째
감내하고 있던 아내는, 진통이 찾아올 때 마다 “못해낼 거 같아 자기야” 하면서 엉엉 울었다.
그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에찬 아내의 눈빛, 표정, 눈물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지금도 그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한번 진통이 오면,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고, 잔뜩 찡그린 눈가로 눈물이 솟아 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숨을 쥐어짜내는듯한 신음소리는 본능으로부터 울려나왔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는데, 아내가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다음날 양 팔에 알이 배겼다.
아내의 팔은 지금 어떨까?
더욱 나를 애처롭게 했던것은, 극심한 피로로  2분의 진통간격에 깜빡깜빡 잠이 드는 아내였다.
깜빡 잠이들었다가 지독한 고통에 잠이 깨는데, 그 고통이 지나가면 또 기진하여 잠이든다.
깜빡잠이든 아내는 눈도 제대로 감지못하고 흰자위를 보였다.
다시 진통이 몰려오면 아내는 두려움이 가득찬 눈으로 내손을 놀라울 정도로 세게 부여잡으며
“우리 유나 언제쯤 나올까?” 하고 물었다.
나는 답을 말해주고싶어 애가 탔지만, “곧 나온다, 잘하고 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5시반쯤 되자, 의사가 검사를 해보더니, 이제 나올때가 다되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끝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손에 부착된 주사 주입구를 통해서 자동주사를 설치했다.
링겔처럼 조금씩 액을 주입해 주는 방식인데, 낙차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기계로 큰 주사기를 아주 조금씩
눌러서 주입한다. 무슨 약물인지 모르겠지만, 분만을 유도하거나 통증을 줄이거나 둘중 하나인듯 했다.
지금까지는 다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양다리를 올려 M자로 벌리고 등을 고양이처럼 한 상태에서 변을 볼때처럼 힘을 써라고 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엄청난 신음을 내었는데, 소리를 내지말고 안으로 삼켜야 애가 나온다고 했다.
신음을 삼키며 힘을 주는것은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몇번의 진통을 지켜본 의사는,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의사가 자리를 비운사이에
진통이 올때마다, 아내는 스스로 양쪽 다리를 다 올릴 수 없어서, 한쪽 다리는 나보고 잡아달라고 했다.
나의 한손은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손은 아내의 다리를 올려잡아 도와주었다.
이때의 아내는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던 태도에서,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지, 한번 해보자 까이꺼!”라는듯 결연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힘들지만, 지금까지처럼 아프지는 않다고 말했다.
간호사 말에의하면, 그만큼 시간이 흘러서 이제 통증에 익숙해 져서 그렇다고 했다.
진통이 올때 아내의 얼굴은 보는것만으로도 이사람이 지금 죽을힘을 다하고 있구나를 알 수 있었다.
찡그릴수 있는대로 최대한 찡그린채 피처럼 붉어진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으~~~으~~~~~~~~” 하며 안으로 있는힘을 다해 삼킨 신음이 이빨사이로 새어나왔다.
소망과는 달리, 혼자만의 노력으로 애가 쑥 나오지는 않는것 같았다.
10분이 100분같은 시간이 지나고, 의사가 다시 왔다.
검사를 해보더니, 이제 곧 나온다고 했다.
아내에게 양쪽 무릎을 스스로의 양손으로 잡고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둥글게한후 힘을 주라고 했다.
나는 이제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없었기에, 옆에서 아내를 지켜보았다.
불현듯 긴장인지 두려움인지 알수없는 감정이 나를 덮쳤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내입을 막고있었다.
아내가 힘을 쓸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얼굴도 잔뜩 찡그려졌다.
불안과 긴장과 희망등이 뒤섞인 감정이 나의 얼굴에 묻어났나보다.
아내는 진통사이에 내 표정을 보더니, 왜 그런 무서운 표정을 하냐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억지로 웃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제 곧 나온다는 느낌이 왔다.
의사도 아내도 또 그들을 보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보인다고했다.
아내가 최후의 힘을 주었다.
정말 죽을 힘을 다했고, 저러다 어떻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지켜보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나왔고, 내 손은 심하게 떨렸다.
의사가 아내의 배를 쓸어내리며, 또 아래로는 아기의 머리를 잡아 당기는듯했다.
아래를 볼수는 없었지만, 느낌에 그랬다.
아내는 숨을 참고, 신음을 참고 미친듯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파! 내뱉고 헐떡이는 숨을 다시 들이마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
그러고는, 더 못한다고 고개를 떨어뜨려 헐떡이는 아내에게 의사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했다.
아내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다시 큰 숨을 들이킨후 힘을 주기 시작했다.
사람은 죽을만큼 힘을 짜낸다음에 탈진할 지경에서 또 죽을만큼 힘을 짜낼 수 있다는것을 이때 알았다.
의사가 회음부절제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내가 갑자기 신음했다. 뭐한거냐, 아프다고 했다.
의사는 계속 힘을 주라고 했다.
아내는 거기에서 또 죽을만큼 힘을 뽑아냈다.
의사도 가진 능력을 총동원 하듯 배를 쓸어내리며 아이를 빼냈다.
아내의 얼굴은 믿기힘들정도로 붉어졌고, 이마에 힘줄이 섰다. 힘을 줄때마다 땀이 배어나오는게 보였다.
보는 나는 숨이 멈추었고, 떨리는 두손은 입을 막고있었다.
알지못할 감동이 온몸과 마음을 덥쳐, 눈에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넘쳤다.
순식간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거의 열두시간의 진통 끝에 마술처럼 아이가 쑥~하고 나왔다.
그리고 정적.(아마 나에게만 정적이었을 것이다)
수 초였을까 수 분이었을까….
“응애~~~~~~~~~~~~~~~~~!!! 으으응애~~~~~~~~~~~~~~~!!!”
그토록 기다리던 첫 울음소리를 들었다.
유나의 첫 울음이 세상에 울려퍼진것은,
2015년 9월 25일 저녁 6시 25분 경이었다.